
“뭐? 그 유카코한테 선물을?”
“응. 이제 사귄 지 백 일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나만 받은 게 많은 거 같아서.”
“히유~ 코이치, 니가 덜 당했구만?!”
방과 후 하굣길. 먼저 앞으로 걸어가는 코이치를 보며 죠스케와 오쿠야스는 수군거렸다. 야, 쟤 표정이 왜 저러냐? 글쎄, 물어볼까? 그리고 그 물음의 대답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야마기시 유카코의 ‘유’ 자만 나와도 질색을 하던 애였다. 아마도 그만큼 시달려서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걔가 잘 해주냐? 지우개도 먹이려 했다고 그랬잖아.”
“…….그 때는 그 때인걸. 지금은 내가 더 잘 해주고 싶어.”
세상에. 완전히 콩깍지가 쓰였구나. 죠스케는 얼굴을 찌푸렸다. 오쿠야스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전 코이치의 표정보다도 더 심각했다.
오쿠야스는 다시 코이치에게 물었다.
“요즘은 좀 어떤데, 그럼?!”
제발, 코이치. 이 솔로군단에서 너만 빠져나갈 순 없다. 요즘도 힘들다느니, 헤어지고 싶다느니. 그런 말 잘 하잖아! 하지만 예상한 대답과는 전혀 다른 말이 코이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 얼마 전에는 같이 데이트 가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랬었지?”
일부러 자랑하듯 말하는 코이치의 태도. 이제 달관했다는 듯 죠스케는 거기 가만 멈춰 섰다. 완전히 사랑의 노예가 되었다. 말도 안 돼, 코이치. 오쿠야스도 슬슬 뒷걸음질쳤다.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
말로만 듣던 ‘커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싫다!”
죠스케와 오쿠야스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 일이 소란의 시작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
“저기, 나한테 물어봐도...”
“뭐라도 없어요? 토니오 씨~”
토니오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코이치 일행은 모리오쵸 안을 쥐 잡듯 뒤지고 있었다. 죠스케와 오쿠야스도 자의가 아니더라도 도와주고는 있었지만. 백짓장 세 개를 겹쳐 올린들 무엇 하랴. 셋이서 머리를 맞대 낸 이벤트는 전혀 써먹지 못할 거 같았다.
보다 못한 코이치가 의견을 냈다. 우선 마을 전체를 돌아다니며 될 수 있는 한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 첫 타깃은 토니오 씨가 운영하는 트루사투디라 할 수 있겠다.
“우리 가게엔...그런 거 없어요.”
“그치만 ‘그런’ 게 뭔지도 아직 안 물어봤잖아요!”
“...좋아요. 말이라도 들어보도록 하죠.”
토니오는 이 동네 최고의 요리사였다. 적어도 그의 요리를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토니오는 한 번 받은 부탁은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코이치가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는데 설마 그냥 돌려보내겠냐, 하는 게 죠스케의 지론이었다.
완벽하게 레이더 안에 들어왔다. 코이치는 계속 물었다.
“그러니까, 혹시 초콜릿 같은 건 못 만드세요?”
“...아? 스위츠...종류 말하는 건가요?”
“네. 여자친구한테 선물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만들 수는 있을 거 같아요.”
토니오의 대답에 코이치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죠스케와 오쿠야스도 코이치의 뒤에서 양 손에 힘을 꾹 줬다. 어쩌면 이 상황, 금방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토니오는 천천히 코이치의 이야기를 들으며 메모했다. 둘이서 먹을 만한 아담한 크기의 케이크에 종류는 생크림... 토니오가 갑자기 쓰던 펜대를 들었다.
“잠깐, 코이치 군.”
“네?”
“더 이상 쓸 여백이 없어서요. 뭘 원하는지는 알겠으니까 이대로만 만들면 되겠죠?”
토니오는 메모지를 들어 코이치에게 보여주었다. 노란 종이가 글씨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이렇게 많은 걸 부탁했었나? 코이치의 얼굴이 삽시간에 빨개졌다.
“..., 죄송해요.”
토니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니에요,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건 좋은 거죠. 많이 좋아하나 봐요? 그 사람.”
토니오의 진심 어린 말에 코이치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펑 터졌다. 어버버,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이래서야 원. 죠스케와 오쿠야스도 뒤에서 키득키득 웃으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그...으러니까~”
“맞아요! 코이치 녀석, 처음에는 계속 싫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챙겨주기나 하고 말임다. 배신자임다. 배신자.”
“모, 몰라. 조용히 해!"
결국 케이크는 완성되면 받으러 오기로 하고, 코이치 일행은 가게를 나갔다.
물론, 코이치만 잔뜩 빨개진 얼굴로.
*
“리본은?”
“엉!”
“케이크는?”
“금방 뛰어가서 받아왔잖아! 여기.”
죠스케는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상자를 코이치에게 건넸다. 오쿠야스는 둘과 발을 맞춰 걸어가며 봉지 안에서 이것저것을 꺼냈다. 코이치가 말하는 물건들을 제대로 사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대로라면 시간이 조금 촉박하기는 했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트에서 금방 꾸밀 물건들을 사게 돼서 다행이려나.
사실, 코이치는 반신반의로 죠스케와 오쿠야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처음만 해도 이렇게 일이 잘 풀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야, 당연히 토니오 씨 가게 가서도 엄청 놀림 받았고 로한 선생님네 집에 가서 여쭤보려고 했는데도 죠스케 때문에 들르지 못했고.
무엇이 어쨌든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믿어볼 심산이었다.
“휴우...”
코이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리가 무겁다. 백 번 봐줘도, 오늘 하루 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다.
“왜 그러냐. 코이치.”
“걱정되서 그래.”
“...뭐가?”
“그러니까, 유카코가 좋아할까 싶어서 말이야. 내가 이렇게 해 주는 걸...”
죠스케는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코이치를 바라보다 오쿠야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야. 얘, 지금 뭐래냐? 이때는 오쿠야스도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 몰라. 임마.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저거 따라오지 말자고 했지! 뻐끔뻐끔, 금붕어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하여간, 죠스케가 코이치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인다.
“...윽! 뭐야?”
“별 걸 다 물어보냐? 걘 네가 뭘 해줘도 좋아한다고 그랬잖아!”
“죠스케 말이 맞다고.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면 안 좋다니까.”
오쿠야스도 옆에서 죠스케의 말을 거들었다. 코이치는 금방 맞은 이맛팍을 마구 문질렀다.
“...어! 야. 저거...유카코 아니냐?”
“...에엥?”
오쿠야스가 흠칫하며 자리에서 멈춰 섰다.
코이치는 처음에, 자신을 놀리려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저만치에서 긴 웨이브 머리에 부도가오카의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가 걸어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웨이브 머리가 학교에 한 두 명이겠는가. 안심하고 있던 차에 완전히 뒤통수를 맞아 버렸다.
셋은 바쁜 대로 일단 인도 옆의 풀숲에 몸을 숨겼다.
“야, 뭐냐. 왜 쟤가 저깄는데.”
“내가 알겠냐고... 큰일 났네. 이거. 어떡할래, 코이치?”
“...방법이 하나 있긴 있어.”
코이치는 짐짓 진중한 분위기로 하나하나 설명했다.
“여기에서 우리 집까지 가려면 그래도 조금 시간이 걸려. 내가 유카코를 상대하고 있을 테니까 너네는 얼른 가서 장식할 거 붙이고, ...집 정리도 조금만 해주라. 알았지?”
오쿠야스와 죠스케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유카코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코이치가 있는 곳에 유카코가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이제 남은 건 그 둘이 얼마나 잘 해주냐에 달려 있었다. 코이치는 주머니를 뒤져 나온 집 열쇠와 케이크를 죠스케에게 맡겼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부탁할게.”
“당연하지, 인마.”
죠스케가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몸을 돌렸다.
“멋있는 역할은 지가 다 한다니까…….나도 가 본다. 코이치.”
“으응! 고마워, 오쿠야스!”
금방 죠스케에게 건네받은 케이크를 들고, 오쿠야스도 손을 흔들었다.
멀어진다.
이제 코이치는 코이치만의 일을 수행할 때다. 풀숲에서 고개만 들이밀었다.
유카코는 반경 몇 미터 이내다. 이대로라면 풀숲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분명 의심받을 테지. 코이치는 재빨리 풀숲에서 나왔다.
유카코가 일자로 쭉 뻗은 인도를 따라 뛰어오는 게 보였다.
“아, 유카코!”
“코이치 구우우운!”
금방까지 이 길에서 계속 걸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앞으로 걷다 유카코를 발견한 척 한다. 먹혀들었다. 유카코는 코이치를 꼭 끌어안았다.
“코이치 군, 찾았잖아!”
“으으응,...유카코.”
“이때까지 어디에 있었어?”
“그게, 잠시 밖에 좀... 헤헤.”
코이치는 유카코를 두어 번 토닥였다. 덕분에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을 한 눈에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지만.
“으응... 그렇구나. 나 코이치 군이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 그랬어?”
더 달라붙어 오는 유카코를 코이치가 겨우 밀어냈다. 아무리 코이치라도 사람들의 그런 눈빛은 거북했다. 유카코는 그것도 모르고 이번에는 코이치의 손을 잡아챘다.
“코이치 군,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
“그야 집에~...헉! 집이 아니고오~......”
이런. 망했다. 코이치는 입을 한 손으로 꾹 막았다.
“정말? 그럼 이제부터 정말 코이치 군네 집에 가는 거야?”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코이치를 끌고 가는 유카코. 코이치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지금쯤이면 걸어가더라도 죠스케와 오쿠야스는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둘이 장식을 끝마칠 때까지 내가 여기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집까지는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면 승산이 있었다.
코이치는 유카코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코이치?”
“으응, 우리 집으로 가자.”
유카코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이때까지 코이치가 자신에게 먼저 스킨십을 하거나,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한 적은 없었는데.
그리고 활짝 웃었다.
“응! 당장 가자, 코이치 군!”
“그래. 하하...”
지는 해가 그림자를 잡아채 길게 늘였다. 코이치의 마음만큼 바쁜 찰나가 스쳐 지나갔다.
*
“응,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그렇지?”
“맞아. 코이치 군, 그보다 이번 주 수행평가 했어?”
“아직. 너무 양이 많아서 말이야.”
코이치와 유카코는 천천히 걸었다. 코이치의 집까지 앞으로 몇 미터. 코 닿을 거리였음에도 코이치의 발은 빨라질 줄은 몰랐다.
유카코는, 사실은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100일 동안, 유카코는 순전히 자신만이 코이치를 좋아한다고 느꼈었다. 사귀고 나서부터 코이치가 예전처럼 자신을 피해 다니지는 않았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는데. 조금 초조해졌다.
자각하지도 못한 채 점점 걸음이 빨라졌다.
코이치 군의 집까지 앞으로 몇 미터. 또각. 또각.
구두 굽 소리가 딱딱한 바닥에 닿아 튄다.
또각.
유카코는 그 앞에 멈춰 섰다.
채 따라오지 못한 코이치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카코 양~ ... 허억, 천천히 가! 천천히...”
“코이치~ 그 정도 체력이면 나를 어떻게 따라오려고 그래?”
당장 코이치가 문만 열어준다면 들어갈 수 있는 거리로 닿았다. 코이치는 시계를 확인했다. 만나기로 한 시각인 정각이었다.
이제까지, 집으로 돌아오면서 유카코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옆 반 담임선생님이 진상이라던가, 친구와 파르페 가게에 갔는데 정말 맛있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시간을 끌려고 한 것뿐이었는데 정신없이 말하다 보니 조금, 조금은 즐거웠다.
오늘 하루 정도는.
코이치는 유카코에게 뛰어갔다. 유카코의 눈이 보기 드물게 커졌다.
“...코이치 군, 힘든 거 아니었어? 괜찮아?”
유카코는 의문스러운 얼굴을 하고 헉헉대며 뛰어오는 자신의 연인을 잡았다. 새빨개진 얼굴로, 숨이 차 겨우 몸을 가누면서도 자신을 위해 못내 쫒아와 준 코이치가 고마웠다.
“...들어갈까?”
“...그러자.”
“저, 저기! 유카코 양. 조금만 가까이 와볼래?”
“...으, 응.”
현관문 앞에서, 그림자가 맞닿았다.
“...”
“...코, 코이치 구우운...”
코이치는 고개를 돌려 문에 코를 박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갔다. 도망갔다, 고 하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쳐다보고 있으면 영 더 부끄러워 질 거 같았다. 물론 본인도 벌써 귓불까지 빨개졌지만.
유카코가 뒤에서 손을 잡아챘다.
“저기, 저어...그러니까. 코이치.”
“...지금은 아무 말도 말아줄래? 유카코.”
입술이 닿았었다. 입술이, 닿았었다. 고. 금방, 코이치가 자신의 옷깃을 잡고 키스했었다. 부드럽게 감싸오는 팔이 상냥했다. 유카코는 연신 볼을 양 손으로 꼭 부볐다.
이게 부끄럽다는 감정이구나.
코이치도 마찬가지였다. 입 맞출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분위기도 영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었기에 부끄러움은 서로의 몫이었다.
코이치는 발개진 얼굴로 스페어 키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초인종 위에 못 보던 쪽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정리 제대로 해 뒀다! 100일 축하하고, 오늘 힘내보라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니지무라 오쿠야스
괜시리 코끝이 뭉클했다. 분명 문을 연다면 유카코를 위한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셋이서 함께 돌아다니며 만들어낸 몇 시간의 하루겠지만, 유카코 뿐만 아니라 자신도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주 큰 선물이자, 난장판을.
닿은 손이 누군가만큼 따뜻했다.
코이치는 문을 열었다.

사람으로 따졌을 때는. 대략 18살쯤일까.
하지만 이름조차 잃어버리고 이미 능력도 9할은 잃은, 허물만 남게 된 나는
신이다.
애초부터 강한 신은 아니었지만 모든 능력을 잃다시피 한 지금. 더더욱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게 되었다.
*
'신'이란 이들에겐 몇 가지의 규율이 있다.
1-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을 직접적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
2-거쳐 간 이름을 다시 사용해선 안 된다.
(이후 쓸모없는 규율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
인간을 사랑해선 안 된다. 만약, 이를 어길 시......
*
"너는 선택받은 아이, 이름이....수지Q?"
내 앞의 작은 소녀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지, 너는.....윽, 이런 쪼그만 애한테 뭐부터 말해야 하는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는 선택받은 사람이야."
"...선...택?"
기껏해야 너덧 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이에겐 어려운 말들뿐이었다.
나는 한참을 머리를 굴려서야 아이에게 맞는 말들을 차츰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얘, 수지. 잘 들어야 해? 그러니까 말이지..... 난 앞으로 쭉 너와 생활할 거야. 그러기 위해선 새 이름이 필요하고."
"이름이....없어?"
"응, 원래는 있었지만, 너와 함께 있기 위해선 새 이름이 필요해."
"그럼 나, 나.... 음...."
"아니아니아니, 천천히 생각해도 괜찮다고! 급한 것도 아니니까 말야."
"아냐! .....좀 더 생각할 수 있어!"
수지는 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죠, 죠셉! 죠셉이 좋아!"
"오- 센스가 꽤 좋은데 그래? 죠셉. 좋은 이름이야. 이름을 붙여줘서 고마워 수지Q
다섯 살. 우리가 만난 건 그녀가 다섯 살 때였다.
*
"수우지-"
"죠셉, 지금 바빠."
"아까부터 계속 놀아주지도-않고-"
"글쎄, 바쁘다니까...."
"쳇, 됐네요! 흥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한 발 떨어졌다. 순간, 나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가 눈을 깜박일 적마다 속눈썹 끝에 걸린 계절이 일렁였다.
그 모습이 퍽 예쁜 나머지 나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말았다.
새삼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수려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 오목조목 따져보면 꽤.....
일순 나를 스쳐 간 것은 규칙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이름 모를 감정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난 잘 모르겠어.
아직 오래도록 인간을 알아온 신이 아니어서일까
아무래도
나는
그녀를
*
죠셉, 그가 나를 불러세웠다.
"수지, 잠깐만."
평소 같지 않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그는 금새 다가와 나를 꽉 끌어안고 속삭였다.
"이제 마지막이 될 거야."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사랑해. 앞으로도 계속."
그가 내 귓가에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큰 바람이 일었다.
마지막의 그의 목소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울보네, 죠셉.
그가 칭찬해 주었던 눈을 꾹 감았다가 살며시 떴다.
"응. 나 또한 사랑해, 죠셉."
내 말에 대답을 하듯 내 앞으로 작은 꽃 한 송이가 떨어져 내렸다